‘공부란 무엇인가?’ 책을 읽은 후 김영민 교수님의 책 2권을 바로 주문 했습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있는 것’, 저는 논어 에세이라는 타이틀에 이끌어 ‘우리가..’를 먼져 읽기 시작했습니다. (10월에 읽은 책)
논어는 동양 고전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니 서문에는 ‘고전’에 대한 이야기로 부터 시작되고 저는 다시한번 저자의 관점에 큰 매력을 느낍니다.
“…왜, 고전을 읽는가?… 고전은 변치 않는 근본 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답을 제공하기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 문제에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나은 통찰과 자극을 주기에 유의미하다…. “ 고전을 읽음으로 현재의 관점으로는 생각 해 내기 힘든 다양한 양질의 자극을 찾기 위해 오늘도 고전을 펴드는 것이 아닐까?

침묵의 함성을 들어라, “…세상에 미련이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은, 푸념할 만큼은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 진정 미련이 없는 사람은 조용히 떠났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당면한 현실 – 회사라는 좀 더 작은 틀로 전환 해 볼 수 있습니다. 정말 회사에서 불만이 크고 미련이 없는 사람들은 사내 설문에 독설과 비난을 쏟아 놓기 보다는 이미 조용히 회사를 떠나갔겠지요.. 그러한 진정한 침묵을 예민하게 함성으로 확대 해 들어 낼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Detect on weak signal, silence organization is in danger…)

“..인한 사람은 사람을 좋아하는 일의 전문가인 만큼이나 미워하는 일의 전문가이다. 누군가를 정확히 좋아하고 미워하려면, 공정성에 대한 명철한 인식과 더불어 높은 수준의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흔히 선한 사람은 덕성이 높아 다른 사람을 전혀 미워하지 않을 것 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미워 할 대상은 정확히 그리고 공정성을 기반으로 미워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 논어에 공자가 직접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예를 들어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이상적인 중도의 길을 가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면 반드시 뜻이 높은 사람이나 소신을 지키는 자와 함께 하겠노라..” 김영민 교수가 말하는 공자는 ‘삶이란 이벤트에서 끝내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사람, (결핍과 부족보다는) 과잉을 찬양했던 사람, 노년에 이르러도 그치지 않는 배움이란 긴 마라톤에 출전하기를 꺼리지 않았던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논어 에세이를 읽으며 다시금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 해 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새로운 것에 도전 그리고 꿈을 위한 용기를 잃었을 때 비로서 늙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이상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지 않는 삶.

‘중용/중도’ 이 얼마나 판단하기 어렵고 지키기 힘든 부분일까요? 책에서는 특정 상황에서 역동성과 유연성을 갖춰야만 ‘중용’을 지킬 수 있고, 그 역동성과 유연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 적용되어 있는 규범/문화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아무런 지지도 얻지 못하는 개인이 파행으로 치닫는 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크게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현 상황/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개선책을 도출 해 내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알다, 모르다, 모르는 것을 알다’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다. 따라서 인간이 잘못을 저지른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잘못을 저질러도 그 잘못을 인지할 수 있을 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잘못을 안다고 해서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뭘 잘못했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라면 절망하기 충분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명확히 아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바로 앎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과 또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혹시, 나는 가짜 지식을 섬기고 있지는 않는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란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합니다. “무지보다 위험한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무지보다는 가짜 지식을 경계해야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던 내용이 가장 뛰어난 임금은 백성들이 임금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로 본인들이 열심히 살아서 세상이 윤택하고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그 시대가 가장 훌륭한 임금이 통지하는 시기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논어에서의 ‘무위’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한 국가의 수장 또는 조직의 리더가 정말 아무일도 하지 않았는데 세상이 평화로왔다는 것이 절대 아니겠지요. “..이는 상대적인 침묵일 뿐 강제적이고 과장되고 폭력적인 해동이 아닐 뿐 (필요한) 행동이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내용을 읽어도 독자의 상황, 현재의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에 따라서 뜻과 의미는 한없이 다른 메시지로 읽힌다고 생각 됩니다. 책 곳곳에 적어 둔 글을 보니 제가 이 책을 읽은 10월에는 조직과 리더의 자격/자세에 대한 고민으로 책을 읽었고 관련 글귀가 의미있게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후기를 적으며 다시 밑줄 친 글귀와 내용을 읽으니 생각도 정리되고 다잡아 지는 듯 해 여전히 좋습니다.
책 서문에 밝히고 있듯이 근복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전이 주는 상대적으로 나은 통찰력과 자극을 얻을 수 있는 논어 – 이를 현대적인 감각, 깔금한 문장과 식견으로 써 내려 간 김영민 교수님의 논어 에세이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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