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참 정신없이 살았다 싶은 것은, 제가 정기 구독하고 있는 최인아 책방의 책이 8월부터 오지 않았는데 (재가입을 놓쳐서) 모르고 그냥 12월이 된 거 였습니다. 다시 가입하고 2024년 1월 책으로 온 것이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입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특히나 좋아하고 일본의 저명한 뇌과학자와의 대담집이라고 하니, 책을 받은 주말에 읽기 시작 해 3일만에 모두 읽을 정도로 내용이 편하고, 좋기도 하고, 그리고 대화문 형식으로 여백이 많아 글이 짧습니다 (ㅎㅎ)
음악을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두 화자가 몸 담고 있는 분야의 깊은 전문성과 삶의 통찰력이 (음악과 뇌과학으로 연결되는 깊고 넓은 지식/지혜의 향연) 의미있는 깨닮음을 이끌어 냅니다. 그리고 면면이 드러나는 두 사람의 지적인 호기심과 탐구 ..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들… 본인의 실수와 경험 그리고 얻은 깨닮음을 담담하고 유머러스 하게 고백하는 점이 이책을 읽는 내내 독자를 흥미롭게 합니다.
‘언어로 표헌할 수 없는 감각’ 내가 느끼는 감각(고통, 즐거움, 슬픔, 좌절 .. 등)을 언어로 표현 해 봤자 (언어는 한계가 있는 표현 수단이며, 나에게는 ‘10’의 고통을 표현한 단어이지만 상대에게는 ‘5’로 인식될 수 있는 보편적인 한계 때문에) 잘 전달될 수 없습니다.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 이해할 수 없지요…‘.이는 경험으로 통해 체득된 ’지혜‘가 지식과 다르게 글로써 설명되어 전달 될 수 없는지 이야기하는 것과같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깨닮음이 오롯이 글로써 전달되는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지혜는 두뇌의 영역이 아니고 감각의 영역일까? 상황이 복잡할 수록 필요한 것인 지식이 아니고 지혜인 것도 같은 이유일까?)


‘현대 문명은 인간의 감각적인 거리가 멀어지도록 변화해 왔다’ 하지만 인간은 신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존재입니다. 원격 회의나 협업으로는 소속감이나 신뢰감을 쌓는데 한계를 갖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물리적/감각적 거리가 좁아질 수록 사람은 소속감과 신뢰감을 더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논리를 구축하고 싶다면 우선 의문문을 축적 해 나가면 되겠네요’, 논리적인 생각은 ‘질문’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가만히 생각 해 보면 제가 매 독서토론을 시작하기 전, ‘들어가는 질문’을 사전에 공유 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시작한 것도, 책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기 위한 논리를 구축하고 싶어서 였을 겁니다. 그리고 의미있던 문구를 각자 낭독하고, 왜 그 구절이 인상 깊었는지 이야기하는 것도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각인 ’청각‘을 좀 더 이용하고 싶어서 였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성인의 독서는 조용히 눈으로 하니까요) 책을 눈으로 읽고, 인상깊은 문구는 밑줄을 긋고, 그 옆에 자신의 생각을 간단히 적습니다. 그리고 독서토론에서 소리내어 차분히 읽고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눈(읽기) -> 손(쓰기) -> 입(읽기) -> 듣기로 전체 감각/논리의 싸이클이 완성이 되는 거지요.
‘흥분성 스냅스‘와 ’억제성 스냅스‘가 모두 적용될 수 있는 감각 – 청각, 청각은 구심성과 지향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 자신이 원하는 소리에 집중 해 들으면서(지향성) 그 외 소리는 억제할 수 있지만 시각은 전체가 그대로 보이는 구심성 밖에 지니지 못한다고 합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던 내용을 뇌과학가가 체계적으로 설명 해주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인간 의식의 흐름도 우리가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긴장하고 계속해서 신경쓰지 않는 한, 순간순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무의식적으로) 자유롭게 흐른다고 합니다. ㅎㅎ
’탁월한 사람의 차이‘, 괜찮게 하는 사람과 탁월히 잘하는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걸까? 결승선이 바로 앞에 있다고 해도 그 결승선을 넘기 전까지는 다 한 것이 아니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그 탁월함을 갖는다. 세상에 ’완벽한 그 무엇‘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지금 보다 조금 더 나아진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만 확실한 것이 인생이 아닐까?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99미터 지점이 절반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끝까지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가면 되는 그 순간에 제대로 하는 사람‘ 되어야 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이 절대 끝난 것이 아니다’ 제가 항상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본다!! 라는 마음가짐과 같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피곤한 삶이네요.. ㅎㅎ)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의 중요함과 그 피곤함‘ 인간의 생활에서 자연의 점점 사라지고, 사회의 관계망이 협소 해 지면서 (탈커뮤니티 화, 핵가족화) 아이들에게는 친구의 관계(또래관계)와 인정이 100%가 되어버리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왜 요즘 아이들의 따돌림이 큰 힘을 갖게 되고, 또 그에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되는 걸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됩니다.
주변의 관계를 풍요롭고 따듯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말을 신중히 선택 해 사용해야 된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따듯하게 말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진정한 경청과 공감‘, 제가 생각하는 경청은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이해/공감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때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상대의 말을 경청했다면 이는 행동으로 연결되어 결과를 도출되어야 하니, ‘경청은 곧 실행이다’라는 보는거죠.
‘변화를 이어가는 삶(노년의 삶)’, 삶의 경험치가 높아짐으로 다양하고 깊이있는 관점으로 세상, 상황, 그리고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두 그리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년에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운동‘, ’독서‘, 그리고 ’외국어 공부(새로운 배움과 도전 그리고 경험 해 본 적이 없는 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 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가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삶을 제대로 즐기고 살아가게끔 이끌어 줄 겁니다.
그럼 노년에 가장 주의해야 할 생각은 무엇일까?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안될 거라고 생각해서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겁니다. 물론 신체/체력적 제약은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제약은 소요 에너지나 기간을 좀 더 길게 잡아 계획을 세움으로써 충분히 도전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접근 프레임‘을 적용 해 삶을 살아야 우리는 좀 더 역동적으로 그리고 풍요로운 인생을 가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상황이 오면, 그저 그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삶입니다. 삶에서 선택지가 너무 많아지는 현상과 그로인한 피로감도 예전부터 느끼던 부분이었습니다. 타인을 의식 해 선택지가 너무 많아지는 것은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좀 더 단순/담백하게 자신의 소신 껏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원리원칙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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