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가끔(아주 가끔 ㅎㅎ) 빌려와 읽습니다. 읽고 나서 괜찮다고 하면 저도 따라서 읽어 보는데 그 중 한권입니다. 청소년 장편소설 ‘페인트(이희영,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200페이지)’, 국가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부모와 살아갈 수 없는 아이들을 시설에서 도맡아 양육하고 13세가 되면, 부모 면접을 통해 아이 본인이 자신의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가상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씌여진 기발하고 참신한 소설입니다.
성인이 되면 센터를 떠나야 하는 현실을 잘 알지만, 안정 된 미래보다는 자신이 도전 해 보고 싶은 방향을 깊게 고민하는 17세의 주인공과 센터 내 아이들의 부모 면접 이야기. 그러한 아이들을 돌보는 센터장과 가디언들 사이의 감정과 전개되는 사건과 이야기들, 그리고 삶과 부모/자식 관계에 대한 저자의 메시지가 면면히 깊이 있게 녹아있어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물론 청소년들에게 좋은 책이라는 것은 의심이 없고, 부모인 제가 읽기에도 참 좋은 책이다 라는 결론입니다)
제가 나이들어 뒤쳐짐에도..자식은 부모에게 새로운 경험과 시야를 넓혀주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닳습니다. 그래서 다른 측면으로 부모/자식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서로 쉽지는 않지만 과거의 지혜를 나누고, 현재의 새로운 지혜를 서로 배우는. 저는 이렇게 아이를 통해 잊고 있던 사실을 크게 다시 느끼고, 최신 음악을 접하게 되고, 드라마를 같이 보고 아이의 설명을 들으면서 ‘요즘 이렇구나..’라고 많이 배우거든요. 도서관에 비치 된 우수 도서인지라 좋은 글귀를 노트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쉽게 말하고 또 쉽게 생각한다. 내가 알고있는 상대가 전부라고 믿는 오류를 범한다. 그런 사람 중 진짜 상대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의 마음조차 모르는데..’ 다시한번 진정한 ‘지혜’의 시작은 상대를 내 자신과 동일한 선상에서 두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글귀가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나는 책 냄새가 좋았다. 사락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 종이 책이 갖고 있는 특유의 냄새까지.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종이책은 영원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페인트(88페이지) 저자의 희망이자 저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아닌 확신? 참고로 페인트 소설의 기술적 배경은 홀로그램 회의가 일반화 된 아주 먼 미래는 아니지만 미래랍니다.
‘승리의 시간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개선문도 세월의 무게로 낡아가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 솔직히 말해도 돼? 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긴장부터 한다.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건 솔직함이 아닐지 모른다. 그럴싸하게 포장한 거짓일지도‘ 페인트(103) ’진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때만 쓸모가 있다. 그게 진실의 역활이었다.‘
’우리는 양떼가 아니기에, 양치기 개가 몰아가는 대로 우르르 움직일 수 없었다. .. 울타리를 벗어난 양은 늑대에게 잡혀 먹히기도 하지만 더 맛있는 풀을 찾을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물리적인 안정감을 위해서 양떼 무리속에서 평생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제 삶도 많은 면이 그렇다고 생각 되거든요.. 울타리를 벗어나는 그 행위부터 도전과 용기가 필요하고, 리스크를 오롯이 본인이 관리하고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는 의미니까요. 하지만 위험과 불명확성이 높은 만큼, 자유도/기대하는 결과 그리고 그에 대한 성과/보상도 높은 법이지요. 돌아보니.. 저는 꽤 여러번 울타리를 벗어나 달렸던 거 같습니다. ㅎㅎ (그 중 여러번은 힘들어서 울면서 뛰었던 기억이.. ㅠㅠ)
‘원칙을 칼같이 지키는 것보다 힘든 것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를 허락하는 일이었다’ 참 동의하는 문구입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도 – 절대 변하면 안되는 원리원칙은 철저하게 고수하면서 그 안에 최대한 유연성을 가져가면서 조직/사람/비지니스를 운영하는 것이거든요. 표현은 단순하고 다들 그렇게 하지 않나..? 라는 뻔한 이야기 같지만, 일관성있게 유지하면서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느낍니다.
먼발치에 대한 멋진 정의 – 시야에는 들어오지만 서로 대화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떨어진 거리.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재능은 얼마나 잘하는가에 달려있는게 아니다. 절대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재능 갔았다’ 이 표현은 작가 본인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리도 저도 깊게 동의하는 문구이도 합니다. 소수의 천재를 제외하고 대부분 범인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재능이란 오랜 시간 흔들림없이 집중할 수 있는 정신력과 에너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떠한 일이든 꾸준히 아주 오랜 시간동안 해 내는 성실함과 진실함 – 재능은 그 위에서 자라나는 생명체이지요.
‘모른다는 것이 꼭 나쁜일만은 아닌 것 같다. 모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고, 모르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으니까. 삶이라는 것은 결국 몰랐던 것을 끊임없이 깨닳아 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긴 여행이 아닐까?’ 페인트(196)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배움의 시작이 되고, 미래의 같은 가장 큰 특징이 ’불명확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스스로에게 괜찮아, 잘하고 있어, 진심으로 격려 해주기 바란다. 왜나하면 당신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니까’ 페인트(201, 작가의 말)
1월 5일부터 저를 짖누르고 있는 자괴감, 2년 6개월 만에 내가 현 직무를 잘 수행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 나의 좌절감.. 위로가 될 상황은 아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작가의 마지막 글귀가 좋아서 적어 둡니다. 작가도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테고..제게도 우연히 만난 (어찌보면 너무 뻔한) 위로의 글귀가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우리는 모두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의 위로 덕분에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독서를 따듯해진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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