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3 ~ Mar 05, 2025) ‘기업철학과 가치’ 사전 필독서
”우리가 철학서를 읽고 고민하는 이유는 내가 갖고 있는 관점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이다“ 이 명제를 훌륭히 풀어낸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 입니다. 책의 서론에 ‘밝을 명(明)’을 들어, ‘사실상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이 붙들고 있거나 몸담고 있는 한쪽 세계를 온전한 전체로 쉽게 착각한다. 특정한 한쪽 세상을 빛나게 해주는 해나 또는 다른 한쪽만을 비추는 달을 유일한 빛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사실상 익숙하고 친숙한 것) 생각하는 것이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시작합니다.
‘밝을 명(明)의 ‘해’와 ‘달’이 이루는 공존과 대립을 동시에 품어낼 수 있는 넓은 공력과 장악하는 힘 – 우리가 이 대립과 공존을 장악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름답고 좋기 때문이 아니라 우선 그것이 실용적이고 미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철학을 통해서 긍궁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시선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철학적인 시선이란? 지식 자체의 맥락과 의미를 따지고, 그것이 세계안에서 벌어는 작동과 활동성을 보려고하는 것. 특히 새로운 변화의 맥락이나 달라질 사회의 흐름을 읽어내는 시선.
철학적인 사고란? 원론적인 관점을 다시 정검하고 WHY?로 접근 해 보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에 “왜 그래야 하지?” “어째서 그래야 하지?”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탁월한 높이의 시선’을 갖는 것은 ‘자기 파괴’ ‘자기부정’의 과정은 필수적이다. (현재 자기의 시선/시야/시각/관점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내가 당연하다고 자연스럽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왜? 정말 그런걸까? 어째서?‘ 질문하면서, ’자기부정‘을 통해서 자신의 올바르지 않음을 그리고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판 자체를 새롭게 벌이려는 시도, 그것이 철학이다. (나는 무엇인가 시작될 수 있도록, 판을 까는 사람) 철학은 적어도 우리에게 세계의 변화 자체를 인지시키고 거기에 반응하도록 하는 힘을 갖게 한다.
우리는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우선 자신을 지성적으로 튼튼하게 하는 일이다. 모든 철학적 자산은 독립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괘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장자처럼 살고 싶다가 아니라) 누군가의 철학적 사유를 내 삶에 적용 해 그 격을 끌어 올리는 것이므로) 철학을 통해 자신이 튼튼해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득은 ’높은 시선‘이다. 인간은 아는 만큼 보이고 깨달을 수 있는 만큼 사색하게 된다. 그러니 세상의 이치와 흐름을 철학을 통해 깨닫고 알게 된다. (식견의 상승)
철학이란? 시대의 흐름을 포작해내는 지성적인 힘.
질문의 힘/우리는 왜 질문해야 하는가?, 제가 의식적으로 연습하는 것은 ‘의미있는 질문하기’ 입니다. 제 경우는 누군가 설명을 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잘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추가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지적인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생산되는 질문은 다른 차원의 생각을 이끌어 내고 자극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호기심과 궁금증을 이끌어 내고 강화하지 않으면 수동적이 되고 생산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질문이란? 궁금증과 호기심은 다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다. 자신에게만 있는 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안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 이것이 질문이다.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일 수 밖에 없다. 대답은 우리를 과거에 갇히게 하고, 질문은 미래로 열리게 한다. 우리는 질문(지적인 호기심과 궁금함)을 통해서 자기 삶을 꾸리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철학적 사고는 특권과 기성 제도와 편안한 습관을 무자비하게 다룬다. 차분한 균형 상태를 즐기기 보다는 불안한 불균형을 과감하게 맞이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그 불균형을 생산해야 한다. (용기와 새로운 도전) 2024년 11월을 시작으로 기존에 안정적이던 조직 구조와 운영에 큰 불균형을 지속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나,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다고 믿고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는 의지.. 이 모든 것이 철학적인 사고에 기인한 것인가??
자기가 선택한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자기가 선택한 길을 스스로 맞는 길이라고 확신하고 견지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 문구는 요즘 제가 주도하고 있는 변화/불편함에 대한 해답을 주는 듯한 문구입니다.
우리는 희망과 꿈을 실현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면 되지, 그 것의 성공 여부에 대한 관심을 지나치게 가질 필요는 없다. 꿈과 희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사실 누구도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곧 과거이고 과거의 틀을 가지고 미래를 결정하면 안된다. 바로 이점이 우리가 비전을 세우고 그 방향으로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VISION이 갖는 의미 – 꿈, it’s all about better tomorrow and strongly connected with why we should be optimisitc)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주체적이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 ‘따라하기’는 쉽고 편하지만 주도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어렵고 힘들다. 사실 따라하기를 하면 최초의 사람이 겪었던 고뇌와 숙고의 불안을 겪지 않을 수 있다. 매우 편하고 안전하다. 편하고 안전한 느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따라하면서 느끼는 창피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일은 ‘편안함’과 ‘안전함’에 빠지지 않고, 다가오는 불안과 고뇌를 감당하며 풀릴 길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계속 파고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적인 부지런함’이다.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은 불편함을 이겨내고 질문을 생산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기 때문에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아 있다. 지적인 편안함에 빠져들면 들수록 인간은 급격히 늙어간다. 반면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아 있다면, 그는 결코 늙은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대답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하는 ’기능‘이지만, 질문은 나의 지적인 호기심과 궁금증 즉 실력을 나타내는 나의 (지적)인격이다. 사람의 격은 어떤 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질문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모든 사람은 그 수준과 격에 상관없이 다 각자 세계를 보는 자신만의 나름의 시각(이론과 지적 체계)을 갖고 있다. 이는 이전의 경험과 터특한 지식위에 세워진 가치관과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경험/가치관/신념을 돌아보고, 반추하고 이를 새롭게 해야 만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퇴보하지 않을 수 있다.
종속적인 주체 vs 능동적인 주체,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나 이념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은 종속적인 주체로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독립적으로 건설하고 실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종속적인 주체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없다. 주어진 것이 당연하고 편안함을 주는데 무엇이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길까?
자신이 하는 판단과 행위가 모두 자기의 결정으로 부터 나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주체, 이 사람이 바로 능동적 주체이다.
지적인 게으름, 기존 관념에 맞는지의 여부만 따져서 하는 일은 매우 편하고 쉽고 또 안전하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렇게 한다. 이것은 분명 지적인 게으름이다. 기존의 용도와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새로운 용도를 계속 숙고해야 한다.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은 편협한 마음에 사로잡히게 되고 다른이에게 자신의 진실을 강요하는 태도를 지니고 세계에 드러나는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 자신을 뛰어넘고 과거의 나로부터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사람이 진짜 강자이다. 일등은 판을 지키는 사람이고, 일류는 새판을 짜는 사람이다. 우리는 견지해야 하는 단계는 바로 새로운 판을 짜는 일류의 단계이다.
비난(Sercastic)이 만연한 조직이 위험한 이유는 남의 탓을 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무엇인가를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데서 시작된다.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닌 비판과 평가하는 사람이 많은 조직은 쇠락해 가고 있는 조직)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 보겠다는 자발적인 행동이 시도되지 않는 조직의 또다른 특징은 비판과 비난은 풍성해도 성숙한 자발성과 책임성은 매우 빈약하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이제까지 제가 몸담았던 회사/조직을 생각하면서 여러가지 생각과 의문이 번잡하게 떠올랐습니다. 선례가 없다면 ‘우리가 한번 만들어 봅시다!’, 예전에 해 봤는데 안 됬었다면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이 흘렀으니 다시 한번 해 봅시다!’ 저는 이렇게 접근 해 보고 싶습니다.
직업인 vs 직장인, 직업이란 자신이 맡은 역할(직)을 사명의식과 자아실현(업)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심으로 임하여 그안에서 보람과 성장이 가능한 것이 바로 ‘직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직’과 ‘업’이 누구에게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일 때는 ‘직장’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회가 낡고 병들면 많은 사람들이 직업인이 아니라 직장인으로 존재하게 된다. 직업인은 돈 몇 푼에 자신의 영혼을 팔지 않으니 부패하지 않고, 그리고 몰입 해 일할 수 있으니 창의적인 도전을 할 수 있다.
좋은 질문이란? 질문에는 반드시 ‘자기 관찰’과 ‘자기 의도’가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좋다. 질문에 접근할 때도 주체성과 능동성을 견지해야 한다. (‘나’ 중심의 접근 – 내가, 나는, 내가 보기엔 접근이 필요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한테만은 진실해야 한다, 큰 인간은 외부의 것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 자신과 경쟁할 뿐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지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부족한지 더 나은지를 따지지 말라. 경쟁에 빠지지 말라. 오직 자신과만 경쟁하라.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은지만 자세히 살펴라. 그리고 절차, 예상되는 결과를 너무 궁리하지 말고 직접 무엇인가를 실행하면서 판단하라. 실행하지 않고 궁리만 하다가는 어느 순간, 저 멀리 뒤쳐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냉장고 문에 눈에 잘 띄는 포스트 잇에 ‘탁월한 사유의 시선’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위해,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적인 호기심과 궁금함으로 생산되는 질문의 힘!’ ‘자기 주도적인 삶 – 희망과 꿈(VISION)의 실현’ 이라고 적어서 붙여 두었습니다. 오며가며 자꾸 되새기고 싶은 글귀이고 책의 내용이었습니다. 자신의 사유의 시선을 돌아 보고, 나태 해 지려는 자신을 점검하고, 다시 바로 서게하는 깊이있고 훌륭한 책 –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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