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을 향해가면서, 나의 개방성(Openness)을 유지하고 높이기 위해 하고 있는 시도가 ‘예전과 다르게 하기’입니다. 예전에는 터부시 하고 필요 없다고 느꼈던 것도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굳이 꼭 필요하지 않는데) ‘새로운 사람들 만나보기’ 입니다. 그래서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모임 제안이 왔을때, 참석해 보는 거죠.
그 시도의 일환에서 박사과정 총문회도 어제 참석했고, 제가 익숙하면서도 익숙치 않은 ‘Agentic AI + Stable Coin’ 세션과 ‘럭셔리 비지니스 그중에서도 마케팅’ 세션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 교수님이 정리 해 주신 것처럼,
Agentic AI는 반복적인 업무와 단순 의사결정을 AI 외주화로 지식 노동자와 우리의 일상에 잉여(Surpuls)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럭셔리 비지니스/마케팅은 경제 활동에서 창출된 잉여를 욕망 기반의 소비로 변환하는 것이다.
명품 소비에 대해 많은 관점이 존재하지만, 맞다/틀리다는 떠나서, 저는 명품 마케팅 자체를 지지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는 어떠한 경우라도 ‘특정 제품이나 브렌드가 나 자신의 정체정(Identity)이 될 수 없다‘라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더해서 ‘물건을 소유하는 것 자체는 인간의 긍극적인 삶의 만족감과 연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고가 제품의 마케팅이 공통적으로 설파하는 것은 제가 동의하지 않는 두 가지 전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헤리티지, 희소성, 차별화, 고가전략 등)
경제 활동에서 필요 이상의 커다란 잉여가 생겼다면 물론 자신과 가족을 먼져 돌보고, 그래도 남는 경우라면 사회와 국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잉여가 편리함과 합리성을 넘어선 소비로, 경제적/권력적/사회적 계층화를 위할 필요는 없는거죠. 저는 그 잉여가 ‘잉여’라는 단어를 꿈 꿀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의 소유를 포기할 때 느껴지는 그 해방감! 수입의 일정 부분를 기부하고, 예상치 못한 수입이 생겼을 때도 동일하게 국경없는 의사회나 공공 의료 시설에 보낼 때 느껴지는 뿌듯함. 소소하게 부모님과 형제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달콤한 과일이나 간식을 챙겨서 보낼 때의 기쁨. 과연 이러한 감정들이 명품을 산다고 해서 채워질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또한 각자 개인의 삶의 원리원칙과 지향점에 따라 달라 질테고, 그 다름도 저는 존중합니다.
예술과 사치는 모두 잉여에서 시작됬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예술과 장인의 손길이 의미없다고 보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잉여에서 탄생한 인간만의 고유한 차별점, 필요 이상의 미를 추구하는 지적인 존재. 하지만 마치 모든 잉여가 사치와 명품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지극히 상업적인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치 그래야 되는 것처럼 이야기는 하는 것이 저를 불편하게 합니다)
럭셔리 비지니스 세션을 들으면서, 두 딸에게 뭔가 특별한 경험을 주고 싶으니, 작은 선물을 해 볼까? 했던 마음을 오늘 아침에 달리기 하면서 버렸습니다. (이래서 달리기/운동이 좋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세우고 하니까요) 이제까지 두 딸과 나누고 공유해 왔던 가치 –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기여하는 삶, 훼손하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제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든 제 동기의 세션은 정말 훌륭했다라는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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